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맹 90/녹색당 (문단 편집) === 독일 통일 이후 === 그러나 냉전 종식과 독일 통일이라는 시대의 급변에 따라가지 못해[* 1990년 총선에서 녹색당이 내세운 슬로건은 "모두가 통일을 얘기한다. 우리는 환경을 얘기한다."였다.], 1990년 총선에서 의석획득기준인 5% 득표에 실패하며 크게 쇠퇴하게 된다. 다만, 이 때에는 동독 지역에만 별도의 봉쇄조항을 적용하여 전국에서 5%를 넘지 않아도 동독 지역에서 5%를 넘으면 의석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하였고, 녹색당이 전국 득표율과 서독 지역 득표율은 5%를 넘지 못 했지만, 동독 지역에서는 녹색당이 동독 지역의 진보 정치 조직인 동맹90[* 1989년 독일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노이에스 포룸(Neues Forum)이 주축이 된 당으로서, 1990년 동독 최초로 열린 자유선거에 참여한바 있다. 결과는 별로(2.2% 득표)였지만.]과 연대한 '동맹90/녹색당'이 5%를 초과함으로써 연방의회에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.[* 좌파당의 전신 격인 민주사회당도 이 조항의 혜택을 받아 연방의회에서 의석을 얻었다.] 이후 1993년 아예 동맹90과 통합하여 동맹90/녹색당이라는 당명을 사용하여 오늘날까지 쓰고 있다. 당이 5% 봉쇄조항에 막힌 1991년부터 다시 원내에 진입한 1994년까지, 녹색당의 [[레전드]][[전설|이자]] [[헤센]]주 [[환경]][[에너지]][[환경부|부]](개편됨) [[장관]]이 된 [[요슈카 피셔]]는 전번과 달리,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고, 본격적인 정권교체 및 통치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[* 이 과정에서 [[요슈카 피셔]] 본인의 [[개혁]]([[다이어트|체중감량]] 및 [[마라톤]] 도전 성공)및 당의 [[개혁]]과정에 관하여 다룬 책이 있다. 출처: '나는 달린다'[[http://www.yes24.com/Product/Goods/159216?OzSrank=1|#]].]. 1996년에는 당의 창당과 발전에 기여한 [[하인리히 뵐]]의 이름을 따서 당 산하에 [[싱크 탱크]]인 '하인리히 뵐 재단'을 창립했다. [[1998년]] 총선에서는 6.7%를 득표하며, [[독일 사회민주당|사회민주당]]과 함께 연방정부 연립내각인 적녹연정을 구성했다. 이는 녹색당이 국가내각에 참여하는 '''세계 최초'''의 케이스가 되었다. 이를 통해 녹색당은 현실정치에 녹아내렸으며[* 그 단적인 예로, [[코소보 전쟁]]의 종식을 위한 [[독일 연방군]] [[파병]] 결정에 동참하는 (당시로선) 파격적 결정을 1999년 전당대회에서 투표로 통과시킨 사례가 있었다. 물론 희생도 있었는데, [[요슈카 피셔]]의 머리와 옷에 [[물감]]을 맞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. 그 이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, 피셔의 연설 후 과반수 이상으로 참전안은 통과되었다. 그리고 [[매들린 올브라이트]] [[미국]] [[국무장관]] 등과 긴밀히 협조하여 공습 등의 방법으로 조기에 사태를 수습, 전쟁을 종식시켰다.] 이때 내각 [[외무부]][[장관]]겸 [[부총리]]로 입각한 [[요슈카 피셔]]같은 [[인기|스타]] [[정치인]]을 배출하기도 했다. 2002년에도 8.6%의 득표율로 대선전[* 만약 이때 2위 [[CDU/CSU]]와 38.5%로 거의 똑같은 득표율을 얻은 1위 [[독일 사회민주당|사민당]]이 이들보다 '''약 6000표''' 이상을 득표하지 못했다면, 정권이 넘어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으나, 녹색당과 [[독일 자유민주당|자민당]]의 결투에서 녹색당이 승리하여, 적녹연정은 계속 일 할 수 있게 되었다. 당시 독일 내에서 인기는 신통치 않았으나, 독일의 [[재정]]을 [[절약]]하고 [[경제]]에 [[활력]]을 다시 불어넣게 한 [[하르츠 개혁]]등이 이때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. 물론 이 개혁 최대 수혜자인 [[앙겔라 메르켈]](재임 2005~'''현재''')이 [[독일 총리|총리]]가 되어서도, 폐기되지 않고 계속 추진되었다.]하여 적녹연정을 이어갔으며, 200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11.94%의 득표율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. [[2005년]] 선거[* [[하르츠 개혁]]이 지지부진해지자 치뤄진 조기 총선. 이때 선거결과를 받아들이고 약 30년간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,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는 있다. 지금도 녹색당 원로로서 일선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정치적 조언들을 아끼지 않는 중. 2021년 [[아날레나 베어보크]]의 [[독일 총리|총리]][[후보]] 결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녀와 연방위원회에 훈수를 두었다.] 에서는 패배하여 다시 야당이 되었지만, 이후 권토중래를 노려 2009년 총선에서 독일 국내 선거로는 최초로 두자리수 득표인 10.7%를 득표, 68석의 의석수를 확보했다. 그러나 그거 이상을 사회민주당이 대연정의 대가로 까먹어서(…) 집권에는 아깝게 실패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